2010년 1월 23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. 인생 최초로 자살을 시도했던 날이기 때문이다. 내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모든 사건들의 실타래가 그 날부터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해 오늘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. 지금도 난 심심할 때면 이따금씩 시간을 되감아 그 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. 만약 지금의 두뇌를 그대로 간직한 채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. . .
1. 당장 정신 병원을 방문해 약부터 먹고, 적절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. 당시엔 내 마음이 이미 골병 들어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. 특히 긴장 증세가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. 그러나 단 한 번도 순탄했던 적 없었던 게 내 인생이었기에 무언가가 심각히 어긋났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, 고3이라면 으레 이 정도는 고생하는 줄 알았다. 더 나아가, 마음의 고통은 나 자신의 의지력과 노력으로 다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. 심지어 자살을 기도한 이후에도! 수많은 정신병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치명적인 착각을 나 역시 범했던 것이다.
2. 스스로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을 것이다. 당시 난 너무나 과도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세운 나머지 정신이 한계에 봉착한 지경이었다. 공부는 더 이상 열심히 할 필요가 없었다. 현상 유지만 했으면 됐다--당해 3월 모의고사에서 전국 50등 안에 들며 정점을 찍을 정도로 공부량은 탄탄히 쌓여 있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실력이 한없이 부족하다 느낀 건 겸양도 정확한 상황 판단도 아닌 내 병적인 자존감 부족 때문이었다. 차라리 못 치렀으면 훨씬 좋았을 시험을 너무 잘 본 까닭에 난 잠시 호흡을 고르며 여태까지의 궤적을 되돌아볼 마지막 기회를 놓쳤고, 이후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정신이 파탄 지경에 빠지며 자연스레 성적은 꾸준히,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.
3. 반장 직에서 즉각 사임했을 것이다. 극단적으로 수줍고 내성적인 내 성품은 결코 리더 자리에 알맞지 않았다.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덜컥 앉게 되자 난 안 받아도 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, 이는 졸업하는 날까지 쭉 이어졌다. 생활기록부의 반장 경력 한 줄을 위해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던 것이다.
4. 기숙사에서 절대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. 군대보다도 더 지독했던 게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엄격한 규율과 동류집단압력이 갖는 장점은 있었다. 당초 예상과는 정반대로 집에서의 등하교는 숱한 불편함과 갈등만 낳았다.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족들은 내 인생에 눈곱만큼도 보탬이 되어 주지 못했다.
5. 적극적으로 외부에서 도움을 구했을 것이다. 본격적으로 공부에 뜻을 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난 외부의 도움을 받길 철저히 꺼렸다. 그저 스스로 궁리하고 노력해서 얻는 것만이 참된 성과인 줄 알았다. 자살을 시도한 다음 날에도 나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겼다. 이 몹시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은 잔뜩 억눌린 내 오만함의 또 다른 표출이기도 했다. 친구들, 선생님들에게 "도와 달라" 단 한 마디만 했다면 . . .
그 외 이루 나열하기 힘든 숱한 실책이 지금도 씁쓸하게 눈앞에 아른거린다. 분명 내 인생은 잘 풀릴 수 있었다. 그렇지만 지극히 미성숙했던 내 자아에 여러 불가항력적 요소가 겹쳐 12년이 지난 지금,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늙어버린 난 지금도 거듭 후회하고 탄식하며 고통 속에서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.
보르헤스는 시간은 셀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했다. 2010년 1월 23일 그 비극적인 날, 내 목숨은 자살 미수에 그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끊어졌을 수도 있었다. 그랬다면 내 이야기는 17세 생일로부터 세 달 남짓 지난 그 날을 종점으로 돌연히 끝을 맺었을 것이다.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까? 아니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좋은 걸까?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마음속을 어지럽힐 때면 난 시간을 되감아 2010년 1월 23일 그 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. 내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모든 사건들의 실타래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한 그 끔찍한 날로 돌아가, 이번엔 성공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길 소망하며 . . 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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